누군가의 메모장

차밭 생각3

차밭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차밭에서 하는 생각들.

2025.04.11

지원은 뾰족해지고 있어 명확해지고 있어. 언어화 할 순 없지만 지원 다운 게 있어. 지원은 '내가 해볼게'를 내뱉는 사람이야. 지원은 절대 소외되지 않아. 지원은 우리에게 특별한 친구야.

내가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 거야?

친구들이 놀러 왔다. 친구들을 앞에 앉혀두고 달달 외웠던 내용을 읊으며 차를 우렸다. 초반엔 긴장도 되고 웃기기도 하더니 금방 신나졌고 즐거워졌고 더할나위없이 행복해졌다. 친구들은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들라 그런지 차의 맛을 다 발견했다. 신기해. 삶은 밤 맛, 호박맛, 메밀차맛.....아 너무 행복했다! 친구들이 먼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는데 현지가 계속 뒤를 돌아보며 밝게 웃어줬다.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현지의 얼굴과 내 행복이 겹쳐 보였다.

2025.04.14

할 일이 너무 많다. 앉아서 하는 일도 아니니 하루가 3시간 같기도 하다. 생각할 틈이 없다. 그래서 숨통이 좀 트인다.

살만하다는 생각과 행복하고 즐겁다는 감각과 힘든 시기를 건너왔다는 자만심에 나는 조금 주춤거리게 된다.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기에 되뇌이게 되는 자만하지말자는 말이 나에게 옳은 것인지도 모른 채 나는 또 어김 없이 나처럼 살게 된다.

2025..4.23

출근 전에 차밭 산책을 하는데 다화로 쓰고픈 꽃을 발견했다. 근데 주변에 벌이 너무 많아서 거의 뭐 쟁탈전이었다. 그래서 나도 꽃을 따서 꿀을 먹었다. 너네만 먹을 줄 아냐.

근데 생각해 보면 얘네는 꿀을 먹는 게 아니라 집에 돌아가서 꿀을 저장해 둔다. 나라면 못 참고 당장 먹을텐데 그걸 또 뱉어낸다. 엄청난 인내심. 본능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태어나자마자 바다를 향해 허우적거리는 새끼 거북이들을 봤다. 음 허우적거린다기보다는 팔딱거렸다.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주위의 그 어떤 생명들보다 가장 팔딱거리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바다의 위치는 어떻게 아는 건지 힘차게 나아간다. 그 짧은 영상을 보고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바다에 도착한 거북이는 어째서 수영을 하는 방법을 아는 걸까. 자기 몸을 덮치는 파도가 무섭지도 않은지 덮쳐진 김에 헤엄치듯 그렇게 떠난다. 생명들마다 저마다의 본능이 있는 거라면 본능에 따라 살게 되는 거라면 내 본능은 뭘까.

2025.04.30

먼지 범벅 인간....온 몸이 간지럽다.

2025.05.07

힘들어 뒤질 것 같다. 양말을 세 겹으로 신어도 뒤꿈치는 내내 아프고 바지는 접어도 질질 끌린다. 키가 크고 싶다. 다른 분들은 집에 못 가는데 나만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는 애라 그나마 일찍 간다. 눈치가 보이는 왖웅에 좋다. 좋은 와중에 눈치가 보인다. 하나만 해라 제발.

5월에 서울을 가려고 했는데 이 몸이면 못 가는 거 아녀? 온 몸이 아프다. 다른 분들도 온갖 통증을 호소한다. 그래도 다들 웃으면서 일한다. 어쩔 수 없는 거니깐.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싶다. 힘들다 아프다 말고 우와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뿌듯하네 이런 걸 더 많이 아니 많지 않더라도 그 순간을 더 빛내주며 그니까 거기에 빛을 비추며 일을 하고 싶다.

어제 엄마랑 얘기를 한참했다. 엄만 언제나 엄마의 일을 사랑한다. 어쩐지 나를 키울 때보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더 능숙하고 현명해지는 엄마를 보면 서운함도 슬픔도 억울함도 밀려오지만 나라고 다를 게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이제 그 격차를 그냥 그러한 것,,,, 그랬던 것으로 바라보려한다. 엄마의 일에 대한 사랑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결혼과 출산으로 일을 포기했던 엄마는 다시 꿈을 갖고 도전을 했고 나는 그게 나에게도 고맙고 소중한 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어느 날 들었던 '애정을 담지 말아야겠다' 그 말이 왜 나에게 맴도는지 안다. 취미로 좋아했던 차를 일로서도 좋아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던 내가 결국 애정에 집착하게 되었다.

애정을 잃고 싶지 않다. 그러니 고결한 것으로, 완전무결한 것으로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것으로 둘 거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것 그러니깐 그냥 그 존재인 것. 그걸 아는 것이 애정이라는 걸 잊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