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메모장

오늘의 날씨

올해는 유난히 계절을 자주 입에 올리게 된다. '이제 정말 봄인가봐' 이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렸던 긴 겨울과 아리송한 봄이 지났고 이제는 무더운 여름만 기다리고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그새 말버릇이라도 된건지 똑같은 문장을 봄에서 여름으로 단어만 바꾸곤 다시 내뱉곤 한다. 어제의 날씨는 초여름이었는데 오늘은 또다시 봄마저 사라진 듯 춥다. 나는 어제만을 기억하고 옷을 가볍게 입어버렸고 쌀쌀한 날씨를 원망하며 회사에 막 도착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모레는 찻잎 수확 일정이 있어 차라리 날씨가 오늘만 같기를 바라게 되지만 이것만큼 소용없는 바람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생각해 보면 뭐든 그렇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순간밖에 없다. 흙이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을 꺼내 입고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다. 아마 감기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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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오늘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되면서 세상 일이 어긋나게 되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할 일이 있다면 다만 오늘이 있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것은 되돌릴 방법이 없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비록 36,000날이 잇따라 온대도 그날에는 각기 그날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실로 이튿날까지 손 쓸 여력이 없다.

이용후 <당헌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