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아갈 때 나만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실체가 없는 것들과 싸우고 있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모두가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다는 건 착각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격지심이 드는 건 나의 오만함 때문이다. 가파른 각도로 위쪽을 향하던 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점을 지나쳐 하강한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내 그래프를 한 발짝, 아니 100걸음 뒤로 가 본다면 예쁜 곡선처럼 보일 수 있겠다고. 그리고 더 더 멀리서 보면 그래프도 내 모습도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도 그냥 하나의 점에 불과할 거라고.
다시 눈을 감는다. 새하얀 도화지에 빈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 안에 무얼 그리든 어떤 도형이든 선이든 색이든 덧그리고 덧칠하다 보면 그저 동그란 원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