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메모장

차밭 생각6

차밭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차밭에서 하는 생각들.

2025.10.15

수업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차나무를 조심스럽고 유심히 보는 분이 계셨다. 공간이 다 정돈되어서 가서 먼저 들어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려볼까 잠시 고민하다 하지 않았다. 시간이 다가오고 다른 분들도 공간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찰칵소리와 웃음소리가 피어올랐다. 그분은 정말 조용히 다구를 찬찬히 볼 뿐이었다. 녹차를 잘 우리고 싶어졌다. 손따기 녹차를 다하에 담고 예쁜 잎만 모으고 그렇지 않은 건 다른 곳에 옮겼다. 수업이 시작됐고 다른 분들이 내 눈을 바라볼 때 그분의 시선은 내 손 쪽에만 머물렀다. 설명과 함 움직이는 내 손. 내가 붓는 물. 그리고 움직이는 찻잎. 첫 차를 함께 마셔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찻잔의 질감을 느끼게 하고, 향을 맡고, 숨을 들이고, 차의 깊은 맛을 느껴보시게끔 했다. 힐끔하고 그분의 반응을 봤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고요함만 그분 곁에 머물렀다. 그분은 정말 천천히 그저 다구를 만지고 차를 붓고 잠시 멈췄다가 차를 마시고 창문 밖을 봤다. 그리고 언제쯤이었지. 호지차를 우릴 때였나. 갑자기 그분의 시선이 내 눈에 닿았다. 그건 고요한 전율이었다고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싶어졌다. 고개를 10cm남짓 올리는 그 자그맣던 움직임엔 어떤 힘이 있었을까. 그 시선과 손길을 잊고 싶지 않다. 몇 번이고 되새기며 이 감각을 꼭꼭 씹어 삼킨다.

내 말의 힘을 생각한다. 잔뜩 준비해놓고 어떨 때는 사람들이 어색하고 오글거려하고 무감각하게 느껴버릴까 싶어 눌러버리는 그 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들어주고 따라와 주는 사람들도 생각한다. 내 말에 내가 힘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그저 내뱉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내 차에, 내 말에 한 번 더 힘을 부여한다. 확신을 갖겠다는 다짐을 한다. 사람들이 믿을지 말지 보단 내가 내 말에 확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하겠다고, 근데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그 말에 확신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고 그러니깐 주저하지 않겠다고 그런 복잡한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