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왔는데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없어서 엄마한테 전화했다가 아빠한테 전화했다가 오빠한테 전화했다 연달아 아무도 전화를 안 받는다 나는 질 나쁜 생각을 한다 끝끝내 오빠가 받는다 엄마 아빠는 모임에 갔단다 그리고 한 20분 후에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빈 공간을 채운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서 둘 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냐고 칭얼거린다 갑자기 셋 다 사라진 거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했다고 그럼 난 어떻게 살지 그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고 그럼 엄마는 너는 어떻게든 잘 살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무슨 그런 생각을 했냐며 웃는다 아빠는 귤 두개를 꺼낸다 엄만 귤을 반 가르고 하얀 귤락이 싫지도 않은지 입에 쏙 넣는다 나는 귤락 싫은데 하니깐 난 좋은데 하고 하나 더 쏙 넣는다 그 옆에서 조용히 귤을 먹던 아빠가 식탁 위의 가래떡을 가리키며 먹으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경로당에서 타온 가래떡이란다 나보고 먹으라 했으면서 아빤 꿀을 찾더니 본인이 먹는다 벌에 쏘인 아빠의 눈이 많이 가라앉았다 엄만 이제서야 사람 같아졌다 하고 나는 그럼 그전엔 뭐였냐면서 우린 웃는다 별 것도 아닌 거에 웃는다 가래떡을 나눠 먹고 꿀을 더 꺼내먹고 엄마의 한 입만 달라는 소리에 나는 아빠 손을 이끌어 엄마 하나 먹여줘하고 엄마 입에 가래떡을 넣는다 엄만 웃고 아빠 엉덩이를 찰지게 때린다 난 웃음이 나서 깔깔 소리를 낸다 그렇게 웃다 불현듯 쓸데없이 옛날 생각을 한다 그 기억 속에서의 아빤 웃지 않는다 웃는 건 2002년 일기장에 쓰여진 아빠뿐이다 사람의 기억은 이기적이고 믿을 수 없는 것들이 잔뜩이라 이 장면도 없던 일이 되어버릴까 무섭다 급히 메모를 한다 날라가지 않도록 없던 일이 되지 않도록 이 글자만큼은 살아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