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메모장

개미똥으로 살고 있습니다

타이베이 여행 중 우연히 들어 간 '리소그라피 뮤지엄'에서 사장님이 나에게 던진 질문.

"ARE YOU A CREATOR?"

일단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알기 전에 'creator'가 뭔지 알아보자.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creator
1. 창조[창안/창작]자
2. 창조주, 하느님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일반적인 ‘창작자’라는 표현보다는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라는 표현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유튜브(YouTube)에서 동영상을
생산하고 업로드하는 이를 지칭하는 말로, 크리에이터가 무엇을 창작하는가에 따라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

흠. 명확하게 와닿지 않으니 '창작자'에 대해 더 알아보자.

창작자
새로운 것이나 예술 작품 따위를 창작한 사람


창작하다
1. 방안이나 물건 따위를 처음으로 만들어 내다.
2. 예술 작품을 독창적으로 지어내다
3. 말이나 일 따위를 거짓으로 지어내다

점점 더 나라는 사람과 'creator' 사이에 간격이 커지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더 절망하기 전에 구글에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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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don't need any special qualifications to become a content creator or to start creating content. But you must commit to posting content regularly to build an audience, become an authority in your niche, and ultimately, earn money. (...more)

...그만 알아보자.

성인이 되고 나서 아마 21살쯤에, 어릴 적 받았던 글쓰기 수업 선생님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드린 적이 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신기할 만큼 기억 속 목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다. 선생님은 그때의 지원이가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하다며 아직도 글을 쓰냐 물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기억나지 않지만 대답을 망설이며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

그리고 거의 10년이 지나 낯선 타이베이 골목에서 마주한 새로운 질문은 잊고 있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목소리는 몇 년 만에 떠올려진 것이었지만 그때의 감정은 최근 매 순간 느끼던 중이었기에 그리 낯설지 않았고 낯설지 않다 못해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고통스러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거냐 묻는다면 '있어서 문제다'가 내 대답이고, 그렇담 뭐라도 시작하면 되지 않겠냐 권한다면 '이미 시작을 한 게 수두룩하다'가 또 다른 대답이다. 완성에 가까워지고 업로드 버튼을 눌러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수록 새로운 그림을 더 그려 낼 자신은 없어지고 완벽하게 그려내지 못한 이전 결과물들이 눈에 밟혔다.

업로드 버튼의 두려움은 커져만 갔고 그 앞에 선 나는 개미똥만큼의 크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지금 글도 사실 여기까지 쓰고 업로드를 누르지 못한 게 일주일은 됐다. 갑자기 개미똥이라니 무슨 말이지 싶겠지만, 정말로 요즘의 난 개미똥만한 용기를 지니며 살고 있는 개미똥이다.

개미똥이 다시 인간이 될 방법은 간단하다.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어떻게든 마무리하는 것, 그리고 눈 딱 감고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것. 두려움에 망설인 채 멈춰있다면 무엇도 잃지 않겠지만 얻는 것 또한 없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잃는 게 없다는 것도 개미똥의 흔한 희망 사항일 뿐, 자신감과 의욕은 멈춰있는 시간과 비례해 사라지고 있음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창작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언젠간는 창작자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날의 대답은 분명 선생님께 망설이며 답했던, 어쩌면 기억을 못 하는 게 아닌 기억하지 않기를 선택한 10년 전의 대답과는 다르다. 쓰고 싶은 글이 생겼고 만들어내고 싶은 것들은 나열할 수 있을 만큼 다채로워졌다. 그러니 그냥 쓰자. 그리자. 업로드하자. 개미똥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