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세상은 망했다.
보호받아 마땅한 것들이 되려 파괴당하며 재료로 쓰이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좌절감에 둘러싸이게 되면 나는 종종 허황된 상상을 하곤 한다.
이를테면, 음, 두 번째 세상 같은 것.
[목차]
1 뾱뾱이
작은 공기 방울이 모여 거대한 충격을 흡수한다.
2 털실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재료로 무언가를 따뜻하게 하는 용도로 쓰이며 매듭짓고 연결하기 위해 사용된다.
3 종이 완충제
얇은 종이에 세로로 난 상처처럼 보이기도 하는 갈라짐이 보호의 역할을 한다.
4 양말
오래 걸을 수 있도록 하며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기능이 있다.
5 찻잎을 담았던 은박 봉투
안에 담긴 것이 온전하게 보관될 수 있도록 한다.
6 단추
옷과 같은 천을 여미는 용도이며 주머니가 찢어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7 포장끈
매듭짓거나 무언가를 감싸기 위해 사용되며 주로 선물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쓰인다.
우리에게 세상을 만들 두 번째 기회가 있다면
그땐 이런 것들로 세상을 만들자.
감싸고 엮고 매듭짓고 보호하는 것들로 말이다.
zine 뒷이야기
안타깝게도, 다행히,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
우리의 세상은 두 번째가 없는 유일한 첫 번째이자 마지막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의 뜻은 그러니 우리에게 지금의 세상을 만회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며, 다른 말로 이 세상이 끝나기 전까진 무수히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허황된 생각은 터무니없지 않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우리가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사는 것이다. 하루하루 두려움에 시달리며 외로움에 떨면서 사는 삶에 적응해버리는 것이다. 두려움없이 살기 위해서라도 세계에 대한 앎이 바뀌어 한다. 세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알아야 한다. 다행히 어떤 앎은 지도다. 새로운 앎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어야 가능성이 태어난다.
정혜윤, <삶의 발명> 55쪽
나는 그 누구의 동의나 허락 없이 '가능성'이라는 단어의 유의어로 '현실성'과 '희망'이 함께 있다는 것에 크고 무거운 의미를 부여했다. 줄곧 허황되고 이상적인 얘기를 늘어놓는다며 지적을 받곤 했던 내가 이 앎을 발견한 건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가능성이 태어난다는 말은 희망의 탄생을 알리는 외침이고, 달라진 현실을 마주하라는 경고음이다. 어쩌면 우리의 단 하나의 세상은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밝은 빛을 기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밝은 빛은 이론이나 개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하면서 깜빡이는 약한 불빛에서 나올 수 있다.
한나 아렌트,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