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4월이 오면 가파도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직도 가파도에 가보지 못했다. 가파도뿐만 아니다. 제주도에 있는 모든 섬을 가보지 못했다. 오늘은 더워서, 오늘은 비가 와서, 오늘은 준비가 되지 않아서, 오늘은 귀찮아서. 그렇게 나는 가봤던 곳만 가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작년에 친구가 그런 질문을 했다. "제주에 살고 싶어, 아님 서울에서 살고 싶어?" 당시의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서울살이가 지긋지긋해지고 있었다. 집 안에서 숨죽여 지냈던 시간이 대부분이었으면서 권태가 찾아왔던 거다. 하필이면 우울이 가득했던 날에 받았던 질문이라 그랬을까, 나는 고민 끝에 "서울 너무 싫어."라고 대답했다.
"기회가 된다면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살고 싶어."
친구는 서울을 다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동네들이 어떤 분위기인지 어느 정도는 다 알게 된 것 같아서 이제는 서울을 떠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내가 싫어한 건 서울이 맞나? 내가 권태를 느낀 대상을 정말 서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서울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친구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고, 친구가 다녀오고 추천한 곳들을 찾아 나섰다. 친구가 좋아한다는 빵집에 가서 빵을 샀고 친구가 자주 갔던 그리 높지 않은 산에 올랐다. 친구가 바라봤을 풍경을 보며 노을이 지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찾은 곳들을 가보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했던 나의 공원, 가고 싶었던 찻집, 보고 싶었던 전시. 그렇게 처음 서울을 마주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제주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서울을 다 알지 못한 채로 제주로 돌아왔다. 제주로 돌아온 나는 친구의 말을 몇 번이고 혼자 곱씹었다.
청보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날 가파도에 가고 싶다. 반짝이는 바다를 보러 우도에 가고 싶다.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음식점과 카페가 더 생겼으면 좋겠다. 가치를 품은 공간들을 찾아내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이곳을 '안다'고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